이 름
2009-11-15 20:45:48
제 목 황병기의 음악 세계 /앤드루 킬릭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
-황병기의 음악 세계

앤드루 킬릭  (영국 쉐필드대학교 음악학 교수)

한국음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황병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전통음악" 즉 국악을 얘기하려면 다른 어떤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국악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음악과 전통악기를 위해 새롭게 작곡된 음악 모두를 포괄하는데, 황병기는  40년이 넘도록 이 둘 모두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그는 전통음악인 산조를 그만의 독특한 형태로 발전시킨 ‘황병기류 가야금산조’를 악보로 출간하고 제자들을 가르친 유일한 음악가인가 하면, 그가 창작한 작품들은 이제 모든 가야금 연주자들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는 국내에서 이미 수많은 대학원 논문들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물론, 아이들 책에까지 등장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국외에서도  연주, 강의, 그리고 글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있다.  1990년에는 남북이 함께 참가한 "평양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남측을 대표하기도 했다. 만일 한 개인이 한 나라의 음악을 대표할 수 있다면, 한국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은 단연 황병기라 하겠다.

        그러나  황병기는 대표자이기 이전에 엄연한 한 개인이다. 이 점이 바로 그의 삶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몇몇 모순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1950년대 이후 국악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여러 면에서 보편적인 흐름을 거스른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문화재위원회의 영향력 있는 위원으로서 정부 지원과 보존이 필요한 전통음악과  관련된 사항들에 참여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히 보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작되던 1962년 바로 그 해에 '숲'이라는 제목의 가야금을 위한 최초의 현대 독주곡을 작곡하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 전통음악학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한국 최고 수준인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훌륭한 연주자와 음악학자 들을 길러내면서도 서양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새로운 연주기법을 창안했다. 예를 들어, 이 앨범의 ‘자시(子時)’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한국 악기들을 위한 새로운 연주기법들을 개발해냈다. 하지만 작곡가로서 그는 여전히 외로운 주역이다. 많은 다른 작곡가들이 그의 음악에 감화되어 한국 악기를 위한 새로운 음악들을 작곡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의 독창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경향을 견인하는 동시에 인습을 타파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것은 그의 삶이 보여주는 모순 중의 그저 한 부분일 뿐이다. 또 하나의 모순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정체성이다.  황병기는 그 자신의 글에서 창의성이 절제된 즉흥의 형태로, 그리고  원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을 점진적으로 다듬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전통한국음악에는 사실  서양식 개념의 "작곡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황병기는 작곡가로서 자신이 서양음악 스타일을 따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받은 첫 음악 교육도 서양 음악이었고 처음부터 서양의 기보법을 사용하여 작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전혀 서양화한 음악이 아니다. 그의 음악에는 전통악기를 위한 곡을 쓰는 많은 동양 작곡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화성적 반주와  두터운 짜임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한국전통음악의 어휘를 넘어서면서도  언제나 분명하게 한국적이다. 황병기는 실제로 서양의 음악적 요소들을 자신의 핵심적인 음악언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계탑'에서 보듯이 서양음악적인 요소들을 서양이라는 지역적인 색체 효과를 내기 위해 가끔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음악에 나타난 모순을 더욱 심도 있게 보여주는 것은 그의 음악이 결코 타협하지 않는 한국적인 음악적 섬세함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청중들에게 크게 어필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첫 음반은 미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부터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연주는 미국, 유럽,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초기 작품 ‘가을’은 훗날 동양음악에 관한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제 선율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이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의 한 예를 보여준다.

또 하나의 모순은 황병기의 현대 작품들이 혁신적인 것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순식간에 "고전"으로 받아들여져 어느새 한국전통음악처럼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침향무’(1974)는 가야금의 전통적인 조율 방법을 변화시켰고 가야금과 장구에 파격적인 새 연주기법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매주 국립국악원에서 열리는 정기 전통음악 음악회 프로그램에 채택된 최초의 현대 작품이 되었고, 다른 여러 음악회에 작곡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전통음악인양 소개되기도 했다. 반면, 황병기의 전통음악 연주는 그의 스승으로부터 배운 산조에 그만의 독창적인 선율을 보탠 점에서 파격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사실 기존의 산조를 그대로 외워 연주하는 현재의 관습에 비하면 오히려 더 전통적이다. 여기서 그는 또 한 번 전통이란 보존은 물론, 창의성과도 상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 표면에 드러나는 엄청난 소리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황병기의 개성이 모든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는 점이 또 다른 모순이다.  그의 첫 창작곡인 ‘국화 옆에서’는 거의 전통적인 가곡처럼 들리고,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고향의 달‘은 강원도의 민요에 가깝다. 하지만 가야금과 목소리가 아우르는 ‘미궁’은  고정된 음들과 리듬의 틀을 벗어난 소리들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 음악이다.  황병기는 그 자신의 소리인 한국소리를 잃지 않으면서,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한국전통음악의 소리 세계를 초월했다. 현존하는 전통 국악의 레퍼토리는 유교 조선시대(1392-1910)에 형성된 것이지만, '침향무'와 '가라도′와 같은 작품에서 보면 황병기는 신라시대(?-935)의 불교문화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려 음악의 영감을 찾을 때, 그는  ‘비단길’과  이번 앨범의 ‘하마단’에서 보듯이 서양보다는 다른 동양 문화권들을 들여다보았다.  만일 이 모든 영감의 원천들이 황병기의 음악적인 색채를 다양하게 해줬다면, 그는 또한 음악적인 상황에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하며 여러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음악들을 작곡했다. 그는 독자적인 취향과 양식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다양성을 이뤄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각각 다르지만, 제가끔 황병기의 지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모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의 향유에는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모순과 부정의 요소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 말하듯이, 모순이란 명상하기 좋은 것이며 황병기의 음악은 명상하지 않고 들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이 시대의 한국과 서양의 청중에게 그의 음악이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음반비평지 Stereo Review는 그의 음악을 "초스피드 시대의 세계에 해독제로서 특별히 가치 있는 음악"이라고 평했다. 그의 음악이 언제나 느린 것은 아니지만 거의 언제나 느리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시계탑’의 마지막 악장에서와 같은 빠른 기교적인 부분에서조차 "정중동"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미궁’에서조차, 그가 1960대 말의 자유분방한 즉흥연주에서 이 앨범에 들어 있는 '낙도음(樂道吟)′의 도교 세계와 '차향이제(茶香二題)′의 탐미주의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음악에 흐르는 명상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불교 성가의 마지막 악절을 사용했다.

음악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명상적 특성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속성이 있는데,  교묘한 리듬(종종 변화하는 박자들을 수반하는) 그리고  가볍고, 투명한 텍스추어가 그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도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들리도록 하기 위한 지나침은 없지만,  그들이 결코 평이하거나 노골적이지 않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무언가를 분명히 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어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대단히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다.  진정한 선의 경지에서 우리는 모순을 명상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 채현경(이화여대 음악학 교수)

-원문-------------------------------------------------------------------------------
Meditating on a Paradox:
The Music of Byungki Hwang

Anyone who knows anything of Korean music probably knows something of Byungki Hwang. No other name is more likely to come up when the talk is of gugak or Korean “national music.” Gugak includes both traditional music inherited from the past and newly composed music for traditional instruments, and in both fields, Byungki Hwang has been a leading light for more than 40 years. He is the only living musician to have developed, taught, and published his own version of the traditional instrumental solo sanjo, while his original compositions have become staples of the repertoire for players of the gayageum zither. In Korea, he has been the subject of numerous graduate theses, television documentaries, and even a book for children. Overseas, he has represented the Republic of Korea and its music through performance, teaching, writing, and, in 1990, leading the South Korean contingent in an exchange of “concerts for unification” with North Korea. If a nation’s music can be represented by an individual, it would be hard to name an individual who represents gugak better than Byungki Hwang.
        And yet Hwang is not merely a representative, but very much an individual. This is one of several striking paradoxes that stand out in his career. Although he has been involved in most of the important developments in gugak since the 1950s, he has also gone against the general flow in a number of ways. On the one hand, he has served on the influential Committee for Cultural Properties, helping to select items of traditional music for government support and preservation. On the other hand, not content with mere preservation, he composed the first modern solo for gayageum, The Forest, in the very year (1962) that the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system was introduced. He has taught in two of Seoul’s top universities from the time when they first opened their traditional music departments, training some of the finest gugak musicians and musicologists; but at the same time, he was exchanging ideas with contemporary Western composers and developing extended techniques for Korean instruments—as we hear on this album, for instance, in Night Watch. As a composer, he remains a lone star, for while others have been inspired by his example to write new music for Korean instruments, none has successfully emulated his unique approach.
But Hwang’s dual role as a trend-setter and an iconoclast is only one of the paradoxes in his career. Another concerns his very identity as a composer. Hwang himself has written that the “composer” was not a recognized figure in traditional Korean music, where creativity took the form of controlled improvision and the gradual re-working of existing material whose original creator was unknown. The concept of the composer, as an individual who creates a new piece of music from scratch, came to Korea from Western music, and in becoming a composer, Hwang was well aware that he was adopting a Western stance. Moreover, his first musical training had been in Western-style music, and from the beginning he composed using Western notation. And yet his music is not Westernized at all. It avoids the harmonic accompaniments and dense textures that have been adopted by many Asian composers writing for traditional instruments, and although it moves beyond the vocabulary of traditional Korean music, it always remains recognizably Korean. Indeed, because Hwang has not made Western elements a prominent part of his own musical language, he is able to use them on occasion for local color, as he does in The Clock Tower.
Compounding this paradox is the fact that, despite his uncompromising adherence to a Korean musical sensibility, Hwang’s music has been popular internationally. His very first recording was released in the United States, where it was greeted with rave reviews, and he has performed his works to great acclaim in many parts of America, Europe, and Asia. His early work Autumn was later used as the theme tune for an American radio program on Asian music. Here is at least one case where ex-president Kim Young Sam’s “globalization” slogan appears to be correct: the most Korean is the most global.
        Yet another paradox is that although Hwang’s compositions are recognized as innovative, they are rapidly coming to be accepted as “classics” and treated in the same way as traditional Korean music. His Chimhyangmu (1974) changed the traditional tuning of the strings on the gayageum and introduced unconventional playing techniques on both the gayageum and the accompanying janggu drum; yet it was one of the first modern compositions to be adopted into the programs of the weekly traditional music concerts at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nd it has been known to appear on concert programs elsewhere without the composer’s name being mentioned. Conversely, Hwang’s performance of traditional music is innovative, in that he has added melodies of his own to the sanjo that he learned from his teacher; but this practice is itself more traditional than the current norm of simply memorizing an existing sanjo. Here, too, Hwang shows that tradition is compatible with creativity as well as preservation.
        A final paradox is that Hwang’s individuality shines through all his works despite their great diversity of surface sound. At one extreme, his first composition Beside a Chrysanthemum could easily be mistaken for a traditional gagok art song, and Moon of My Hometown (on this album) is close to the folk song style of Gangwondo Province. At the other extreme, The Labyrinth for voice and gayageum is thoroughly avant-garde in its use of sounds unstructured by fixed pitches and rhythms. Without losing his Korean voice, Hwang has reached beyond the sound-world of traditional Korean music in both time and space. The extant repertory of traditional gugak was formed during the Confucian Joseon Dynasty (1392-1910), but in some works, such as Chimhyangmu and the earlier Gara Town, Hwang has drawn inspiration from the Buddhist culture of the Silla Kingdom (?-935). When he has turned his attention outside Korea, he has looked less to the West than to other Asian cultures, as with the Persian references in The Silk Road and (on this album) Hamadan. If these diverse sources of inspiration have enriched Hwang’s palette of tonal colors, he has also proved flexible in responding to commissions and providing different music for different contexts. Yet he has achieved this diversity without compromising his individual taste and style. Each work is different, yet each bears the fingerprint of Byungki Hwang.
        How are we to make sense of all these apparent paradoxes? Perhaps we need not make sense of them at all, for in all artistic enjoyment there is probably an element of paradox or contradiction that remains unresolved. As Zen Buddhists know, a paradox is a good thing to meditate on; and Byungki Hwang’s music is nothing if not meditative. This is surely a big part of its appeal for contemporary Korean and Western audiences alike. No wonder Stereo Review called it “especially valuable as an antidote to today’s high-speed world.” Not that Hwang’s music is always slow; but it nearly always begins and ends in a slow and meditative mood, and even in fast virtuoso passages such as the last movement of The Clock Tower, there is usually a feeling of “stillness in motion.” Even The Labyrinth uses a concluding passage of Buddhist chant to return to the meditative ethos that runs through Hwang’s music from his laid-back free improvisations of the late 1960s to the Taoist world of Nakdo-eum and the wistful aestheticism of Two Poems on the Fragrance of Tea (both on this album).
Contributing to this meditative quality are two things that can be described in musicological terms: subtle rhythms (often with changing meters) and light, transparent textures. There is never too much going on at one time for everything to be clearly audible; but what is going on is never plain or obvious. We have the sense that we see something clearly, yet what we see is something complex and perhaps contradictory. In the true Zen spirit, we are meditating on a paradox.

Andrew Killick
Senior Lecturer in Ethnomusicology
University of Sheffield, U.K.


No. 이름
제목
날짜 조회
11
 비엔나에서 온 편지
2011/09/16 14752
10
 황병기 연보
2011/09/13 19309
9
 황병기 작품목록
2011/09/13 14638
8
 비단길에서 경계를 넘다 /김아타
2010/08/07 12990
7
 '비단길'에 대한 법정스님의 글 [3438]
2009/11/15 4665
 황병기의 음악 세계 /앤드루 킬릭 [2326]
2009/11/15 17453
5
 '미궁'에 대한 질문과 답뵨 [7]
2009/09/22 3716
4
 '미궁'의 가사에 대하여 [22]
2009/09/22 4198
3
 [논문발췌]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하여 /김진아 [1]
2009/09/22 4539
2
 침향에 대하여
2009/09/22 2949
1
 ♣ 황병기 에세이집: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2009/09/22 3735
1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신의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