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름
2010-08-07 16:26:15
제 목 비단길에서 경계를 넘다 /김아타
지난 2010년 7월 30일 올림푸스 홀에서 열린 ㅎㅂㄱ 연주회에 뉴욕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아타 선생이 관람하고
쓴 감상문이다.

황병기 공연 - 2010년 7월 30일.

비단길에서 경계를 넘다.





“나의 음악은 재미가 없는데 많이 오셨다.”

“나는 아직 뒤를 볼 줄을 모른다.”



간단한 질문에 선생의 말은 간결했지만, 핵심을 말했다.

연주는 조용했다. 움직임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었다. 현을 타는 손가락은 약해 보였지만, 작은 움직임 만으로 고음을 튕겨내는 내공은 엄청났다. 현을 따라 현을 타고, 현과 내가 둘이 아니기를 수십 해를 보냈다. 소리는 그 힘에서 나온다. 손가락과 현이 만나서 소리를 낳고 자궁을 닮은 오동을 울리고 다스려야 밖으로 나온다. 비로소 세상은 완전하게 공명한다.



큰 몸놀림 없이 살짝 건드리는 폼에서 엄청난 고음을 만들어야 보는 내가 편안해진다. 움직이지않으면서 미물(微物)도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저음의 절정이다. 이것이 소리에서 動中靜이고 靜中動이다.

선생의 연주가 그랬다. 극도로 제한된 동작에서 나오는 미니멀한 소리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리에는 미궁에서 보았던 현의 업(業)도 녹아 있었다.



선생은 소리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궁은 소리에서 해방되기 위한 여행이었다. 가야금 소리를 내지 않고 다른 소리를 내었다. 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인간에 있어 해방이란 신체와 의식과 사상의 자유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유로워야 할 세계는 곳곳에 있다. 선생이 찾고자 했던 소리여행도 그런 것의 하나였다. 어떤 것이 정상적이며 바른 것이며 좋은 소리인가? 어떤 소리가 완벽하고 완전한 소리인가? 바흐와 모짜르트가 만든 곡을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하모니가 주는 감동이 그것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그리고, 그 이하의 소리의 본질이 있다. 어떤 형태로도 규정 지을 수 없는 소리의 우주가 있다. 태초에 빛이 있었고 소리가 있었다. 보지 못하면 소리가 세상을 만나게 한다. 소리가 빛과 다르지 않음이다.  



비단길은 고향으로 돌아 온 듯 했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노도와 같은 풍진세상을 눈처럼 녹여 내어 고향집의 따뜻한 온돌방에서 손자 손녀에게 오순 도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세상살이가 녹아 있다. 듣기 좋은 말 만으로 자신의 DNA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의 이치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엄청난 내공을 담고 있어야 하고 풍진세상을 세상을 살아 내야 하는 지혜와 이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진화가 인간을 어디에 데려다 놓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선생의 연주가 그랬다.



선생의 연주는 이미 境界를 넘어서 있었다.

境界는 이것과 저것을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境界를 넘어야 경계가 없어진다. 비로소 완전한 소통이 되고 소리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境界는 완전한 소통과 해방의 다른 말이다.



재미가 없는 것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재미이다.

그것이 예술의 시작이자 끝이다.



선생의 연주가 그랬다.



2010년 7월 31일

아타김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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